번역의 어려움 잡담

최근 들어 니시오 이신 (西尾維新)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진지하고 읽는 재미도 있어서 꽤나 마음에 든다. 덕분에 니시오 이신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애니도 찾아 보게 되었고, 번역본 소설도 몇 권 구입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번역본을 먼저 보고 나서 정식 번역본 소설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자의 훌륭한 번역 덕분에 다시 읽어도 전혀 지루한 줄을 몰랐다.

전문 번역자는 아니지만, 가끔씩 외국어로 된 문장을 한국어로 옮길 일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럴 때면 난감한 기분이 든다. 특히 힘든 것은, 최대한 원문을 살려서 번역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아니면 한국어 사용자가 받아들이기 쉽도록 원문의 내용을 다소 변경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일본어는 한국어와 문법도 살짝 비슷하고 한자를 사용하는 점 때문에 유사한 어휘가 많아서 영어나 다른 유럽어에 비하면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 하더라도 머리 아픈 상황이 발생하는 빈도가 적을 뿐 절대로 없지는 않은 듯 싶다.

예를 들어, 니시오 이신의 소설 중에 '칼 이야기(刀語)'라는 것이 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저승의 코모리'라는 이름을 가진 닌자가 있다. (단역이다.) 여기서 사용된 저승은 일본어로 '冥土'라고 쓰고 '메-도'라고 읽는다. ('메'를 장음으로 길게 발음해야 하기 때문에 하이픈을 붙였다.) 그런데, 하녀라는 뜻의 영어 단어 '메이드(maid)'를 일본 사람이 발음할 경우, '메'뒤에 오는 '이'발음은 그냥 '메'를 길게 발음하는 걸로 변형되고 '드'는 '도'가 되어 버린다. (일본어에는 '드'발음이 없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저승과 메이드가 발음이 같아지는데, 이걸 사용해서 작가가 닌자의 별명을 개그의 소재로 삼아 버린다. 이게 재미있는지 어떤지를 떠나서, 도대체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한테 이 내용을 어떻게 번역해서 전달해야 좋단 말인가.

스티븐 킹 (Stephen King)의 걸작 '다크타워(The Dark Tower)'시리즈는 번역의 어려움을 절실히 보여준다. 3권 후반부와 4권 초반부의 주 내용이 영어 수수께끼(riddle) 맞추기인데, 영어로 된 수수께끼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설명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예를 들어, What has four wheels and flies?의 정답은 Garbage truck이다. 'fly'를 난다는 뜻의 동사로 착각하게 만든 뒤 사실은 파리라고 하는 셈이다.) 다크타워 시리즈가 예전에 번역본이 나오다가 3권까지 나온 뒤 중단되었고, 다시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고 있는데 3권까지 나오고 4권 발매가 계속 늦어지고 있다. 정말로 수수께끼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에 내가 번역자인데 나에게 다크타워 4권을 번역하라고 부탁하면 나는 거절하고 싶을 것 같다.

시는 번역하면 더 이상 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번역하는 건 그와는 다르겠지만, 이 때에도 번역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새로운 글을 쓰는 작업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니시오 이신의 '괴물 이야기(化物語)'의 정식 번역본을 보면, 원작에서 '스윙연습을 하는 자세(すぶりをするそぶり)'라는 표현을 '정거장 옆 정차장'으로 바꿔 놓았다. 원작에서 すぶり나 そぶる가 한자로 쓰면 똑같이 素振り가 되어 버리는 걸 이용한 말장난이 나오는데, 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한자를 한글로 표기할 때 서로 다른 표기방법이 등장하는 단어로 대체해야 하고, 그래서 停車場이 등장한 것이다. 훌륭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번역임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역자의 고민이 느껴지기도 하는 대목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습작도 해 보려는 초창기의 의도는 거의 사라지고, 이제는 방치 상태에 이른 현실을 볼 때, 글쓰기 연습을 차라리 번역을 통해 해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블로그에 글을 올릴 시간도 없는데 번역할 시간이 있을지는 의문시된다.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에 관해서 잡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涼宮ハルヒの憂鬱)은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다. 소설로도 크게 히트를 쳤고, 애니화되어서 더욱 더 유명해졌으며, 만화나 각종 패러디 작품 등등으로 엄청나게 알려진 작품이다. '우울' 이외에도 시리즈 중의 몇몇권은 (특히 4권 '소실') 상당히 재미있으며, 기본적으로 작가의 필력이 좋아서 시리즈 전체를 놓고 봐도 꽤나 괜찮은 작품이다. 세카이계 작품에서 (역설적이게도) 우울한 면을 최대한 빼내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비슷한 작품이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일 일지도.

그렇지만 1권인 '우울'의 작품 수준은 시리즈 전체보다 확실히 높다. 사실 이런 현상이야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아니 일본의 라이트 노벨 시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어느 곳에서나 흔히 있는 일일 것이다. 즉, 처음부터 장편으로 기획되지 않은 장편은 첫번째 작품이 가장 재미있다. (이를 두고 영화계에서는 전편만한 속편은 없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유야 명확하다. 어떤 작품을 쓰면서 이게 정말로 인기작이 되어서 장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보다는, 한 편으로 모든 것을 다 보여주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 훨씬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었는데 (아니면 영화를 봤는데) 설명이 안 되고 끝나는 부분이 너무 많으면 평이 좋을 수가 없는 법이다.

일종의 타협안으로 사람들은 약간의 떡밥을 깔아 놓기 마련이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서 하루히가 쿈을 보고 뜬금 없이 "나, 너랑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던가?"라고 말한다던가 하는 식이다. (금서목록 1권에 레일건이 나오는 건 정말 대놓고 노린 거라고 본다.) 이런 종류의 떡밥은 보통 설명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기 때문에, 나중에 활용할 일이 있으면 그 내용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코난 도일이 셜록홈즈 시리즈에서 늘 사용하던 방법이기도 하다. 보통 왓슨이 '홈즈가 특정 시기에 XX사건을 해결하느라 바빴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러한 사건들 중 일부는 나중에 단편으로 쓰이기도 했다.

작가인 타니가와 나가루(谷川流)는 정석대로 약간의 떡밥을 깔아 놓기는 했는데, 자기가 쓴 글이 이렇게까지 인기를 얻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듯 싶다. 그냥 한 권의 소설로 적당히 돈 벌고 인기를 얻은 뒤 유유자적하게 새 작품을 쓰면서 살고 싶던 것 같은데, 출판계라는 곳이 돈 될 만한 아이템을 보고 가만히 있는 곳이 아닌 법이다. 타니가와의 전략이었는지 아니면 출판사의 전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번째 소설은 떡밥과 전혀 상관없는 장편소설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한숨이 나오는 혹평받는 소설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작가가 뜻한 바가 있었던지, 아니면 출판사에서 뭔가 정신을 차린 건지, 떡밥 회수/정리 및 플롯 구성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 플롯 구성이라는 것은 시리즈가 점점 길어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내용에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서, 2권을 제외한 장편소설은 모두 커다란 흐름을 발전시켜 나가는 내용임과 동시에 시리즈의 뼈대를 이루게 되고, 단편소설은 대부분 에피소드 중심의 없어도 그만인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물론 여기에 일부 예외가 있다.) 없던 플롯을 만들어 내면서 플롯이 없던 시절에 쓰여진 이야기와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쉬워 보이지는 않는데 아직까지는 근근히 버티고 있는 것으로 봐서 역시 작가가 재주있는 사람이다.

참고로, 내 생각에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진행으로 볼 때, 주요 작품으로 취급될 만한 것은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1권) -> 조릿대잎 랩소디 (3권, 단편) ->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4권) -> 설산증후군 (5권, 단편) -> 아사히나 미쿠루의 우울 (6권, 단편) -> 스즈미야 하루히의 음모 (7권) -> 스즈미야 하루히의 분열 (9권) -> 스즈미야 하루히의 경악 (10, 11권)

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 주요 스토리라인을 가급적 피하고 중요하지 않은 에피소드 중심으로 끌고 나가려는 전략을 취한 듯 싶다. 만약 그렇다면 3기 애니메이션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첫눈에 반한 LOVER', '고양이는 어디로 갔지?', '편집장 일직선', '원더링 섀도'로 내용을 구성한 뒤, '아사히나 미쿠루의 우울'까지 넣고서, '스즈미야 하루히의 음모'는 극장판으로 제작될 가능성이 크다. 그 사이 정신차린 타니가와 나가루가 단편집 하나 정도 더 내면, 거기에 '설산증후군'을 포함해서 4기 애니메이션을 만든 뒤 다시 분열 + 경악으로 극장판 두 개정도 만들면 딱일 듯.


더럽다는 표현의 예외 잡담

예전에 김병현과 박찬호가 모두 메이저리그에 있던 시절, 박찬호가 매우 안 좋은 상태에서 부활하고 있던 시기 쯤의 일이다. 미국에 있던 한국 기자들 중에 누군가가 김병현한테 요즘 박찬호 선수 공이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김병현이 꽤 지저분하다던가 꽤 더럽다던가 하는 표현을 해서 논란이 일어났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 얘기하면 논란은 아니었고, 어떤 기자가 '김병현이 감히 대선배인 박찬호한테 더럽다는 표현을 함부로 썼다'라는 투로 기사를 쓰자, 사람들이 저 기자는 야구를 알지도 못하는 기자가 왜 미국까지 가서 기사쓰고 있냐고 난리를 쳤고, 덕분에 기사가 쏙 들어갔던 정도이다. (요새 표현으로는 역관광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저 사건을 접한 뒤에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더럽다는 표현이 칭찬이 되는 경우가 야구 투수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크리켓에서도 쓸 텐데, 어차피 같은 개념이다.) 그러니 야구를 잘 알지도 못하는 기자면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법 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야구를 잘 알지도 못하는 기자였으면 아예 메이저리그 취재를 가지 말던가, 아니면 기사 쓰기 전에 좀 주위에 물어보던가 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 중에는 날아가는 동안 변화가 상당히 심한 공들이 있다. 공이 날아가는 궤도를 예측하기 어려울 수록 타자가 공을 치기가 어렵기 때문에, 투수들은 공을 잡는 모양, 팔이나 손목을 비트는 각도 등을 바꿔가면서 공에 심한 변화를 주게 마련이다. 이때 타자가 보기에는 공이 똑바로 날아오는 게 아니고 뭔가 어지럽게 날아오기 때문에 공이 날아오는 모습이 깨끗한 점이나 선 모양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공을 지저분하다거나 더럽다고 표현한다. 영어에서 온 표현일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영어에서도 nasty하다고 주로 표현을 하고, 변화가 정말 심할 경우에는 dirty나 filthy라는 형용사를 쓰기도 한다.

이렇게 공이 더럽다고 하는 것은 투수가 그만큼 능력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투수한테는 정말로, 비꼬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지도 않고, 칭찬이다. 같은 이유로, 어떤 투수의 공이 너무 깨끗하다고 하면, 그건 그 투수가 능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는 표현이 되어 버린다.

유튜브에서 nasty pitch를 검색해 봤는데, 검색된 동영상이 safty mode가 on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nasty에는 성적인 표현이 결합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 듯 싶은데,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런 종류의 예외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기는 매한가지인 듯 싶다.



http://www.youtube.com/watch?v=d_Rmdj_-6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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